본문 바로가기

일상 및 잡담

일의 의미

내 이력서는 이러한 문단으로 시작한다.

제가 만든 서비스와 프로그램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서비스의 가치와 지향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떠한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어떤 서비스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지, 그 제공되는 서비스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개발자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시스템 깊숙한 곳에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경우에는 그 시스템을 통해 실제적으로 어떤 것들이 만들어지는지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나는 서비스 개발을 주로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개발한 결과물을 사용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접했다.

내가 지금까지 개발했던 대부분의 서비스는 내가 실제로 먼저 사용하는 서비스였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내가 직접 사용해보고 느꼈던 것들이 사실 제일 가까이에서 느낀 사용자의 반응이었다. 어쩌면 나와 일을 분리시키 못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일은 단순히 계약된 보수를 받으며 고용주가 원하는 스펙의 소프트웨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조금 더 무언가 더해진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아 실현이라는 거창한 주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개발하는 서비스를 사랑했고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기대가 크면 상처가 큰 것인지... 어쩌면 기업의 무조건적인 이윤추구와 그를 위한 의사결정들에 상처를 많이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게 잘못되었다거나 악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계속 개발자로 일하면서 드는 생각이, 내가 개발하는 서비스를 사랑하는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무슨일을 하는 사람인가? 결국 고객의 요구사항을 받아서 적절한 기술을 선택하고 코드를 작성하여 해당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던가.

자주보는 자동차 유튜브 채널에 나온 한 미캐닉 아저씨가 하셨던 말이 기억이 난다. 그 아저씨는 자동차 정비사라는 직업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정비지침서를 토대로 능숙하고 빠르게 자동차를 정비하는 직업

참으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명확한 정의가 아닌가.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정의와도 참으로 닮아있지 않은가. 여기에 그 어느 부분에도 훌륭한 차를 만든다던지, 멋진 차를 만든다던지 하는 가치판단이 들어가있지 않다. 또 어느 곳에라도 들어갈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개발자라는 직업도 자신이 어떤 개발결과물을 만들었는지와 상관 없이 결국 자신의 개발 전문성과 업무 수행 능력으로만 평가 받는 직업인 것이다.

참으로 반박할 수 없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한 명의 사람으로 생각해보면 어떤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목숨까지도 바치는 동물이 아닌가. 목숨까지는 모르겠으나 내 인생의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앞으로 할애하게 될 일에 대해 나의 가치관을 적용하지 않기란 참으로 쉽지 않아보인다.

일의 의미... 단순히 노동을 통해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버는 것보다는 많은 의미를 두고 싶다. 누군가는 참으로 교만한 생각이고 과한 욕심이라 말할 수 있을만한 생각이지만..

앞으로 훨씬 많은 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다. 그래도 내 일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말자... 라고 다짐해본다.